얼마 전 SBS 실화 스토리텔링 예능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에서 '가락동 살인사건'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이 사건을 되돌아보며 스토킹 범죄의 위험성을 알아보고 2021년부터 시행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가락동 살인사건 개요
2016년 4월 19일 백주대낮인 12시, 송파구 가락동 한 아파트에서 한 여성이 살려달라는 말과 함께 비명을 지르며 맨발로 뛰쳐나왔습니다. 뒤쫓아 온 남자의 손에 들려있던 칼은 이내 그녀의 몸을 관통하였고 남자는 불과 몇 초 안에 벌어진 일에 놀란 주민들을 따돌리고 오토바이를 탄 채 도망쳤죠.
경찰은 수사 24시간만에 도주한 범인을 체포하였고 그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피해자 김정은씨와 8개월간 교제를 해온 그녀의 전 남자친구 한효준이었습니다. 사건발생 2달 전, 한효준의 과도한 집착과 거짓말에 대한 실망으로 피해자가 이별을 통보하자 그녀를 스토킹 하다 잔혹하게 살해한 것 입니다.
나와 헤어지면 너와 너의 가족 다 죽여버릴 거야.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 더 틀어지게 만들지 마.
네가 불행해도 나를 그냥 만나면 안 돼?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한효준은 편지와 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집착을 드러냈으나 지속적인 정은 씨의 거절 의사에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안 만나주면 자살을 하겠다거나, 너와 너의 가족을 살해하겠다거나 끔찍한 말로 그녀에게 만남을 강요하며 가스라이팅을 했습니다.
한 달여간 연락이 없었던 4월의 어느 날, 그녀의 집이 빈 것을 확인한 한효준은 칼과 로프, 압박붕대, 넥타이, 박카스 3병에 염산을 넣은 가방을 들고 그녀의 집으로 향합니다. 1시간의 실랑이 끝에 정은 씨는 집 밖으로 뛰쳐나왔고 그의 손에 무참히 살해당했습니다.
"사랑해서 그랬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는 변명으로 법정에서 자기 방어에 나섰지만, 검사는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고, 법원은 초범이나 스토킹 살인의 죄질이 무겁다는 이유로 항소에도 불구하고 무기징역을 언도했습니다. 한효준은 현재 복역 중입니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인식 변화
법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였습니다. 그러나 '스토킹의 범위'나 '피해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고, 심각한 스토킹은 협박이나 강요죄로 처벌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했죠.
2021년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까지 너무나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생명과 일상생활이 위협받는 수준의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는데도 정작 스토킹을 행한 가해자는 경범죄로 분류되어 8만 원짜리 과태료만 내면 끝났으니까요.
주요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 관련 법 제정이 이루어진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처음 국회에 발의된 1999년으로부터 22년이나 지난 2021년 처음으로 국회를 통과했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지옥에서 살아왔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21.10.21) 제정·시행
과거에는 직접적·물리적 피해가 존재해야만 경찰 등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면 관련 법제를 마련해 스토킹 범죄 발생 우려의 요건만으로도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8만원짜리 경범죄 딱지 하나로 피해자를 괴롭힐 수 있었던 말도 안 되는 처벌수위도 형사처벌 대상으로 바꿨습니다.
또한, 최근 법무부에서는 가해자가 처벌을 피하고자 피해자에게 합의를 강요할 목적으로 만나 2차 가해를 하는 상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피해자 의사와 관계없이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법 통과 이전 발생했던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 최근 발생한 신당역 지하철 역무원 살인사건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문제의식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을 반영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층간소음 피해자에게 이 법을 적용하는 등 해석 오남용을 막기 위한 몇 가지 장치만 더해진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수없이 많은 피해자의 유가족들이 20년간 고생하여 통과시킨 법인만큼 폭력을 사랑으로 덧칠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스토킹 범죄가 근절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안전이별'이라는 말이 유행이 된 흉흉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스토킹 범죄의 전조증상인 '과한 집착'을 보이는 이성을 멀리하여 정신이상자들과 엮이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혹, 이미 피해를 겪고 계시다면 아래 번호로 도움을 요청하시기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