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불감증은 안전의식이나 사고에 대한 위험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와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사고로 이어지게 됩니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침몰, 광주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용산 이태원 참사사고는 모두 국가와 기업들의 안전불감증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안전불감증을 뜻하는 이론들 알아보고 작년 할로윈 데이 때 발생했던 이태원 참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안전불감증을 설명하는 3가지 이론
(1) 하인리히 법칙
1930년대 보험회사에서 산업재해를 점검하고 연구하는 부감독관으로 근무한 윌리엄 허버트 하인리히는 수만건의 보험사고 보고서를 연구한 결과 대형 사고의 인과관계를 밝혀냈습니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회사에서 근로자 사망과 같은 대형 사고 1건이 발생하기 전 29건의 경미한 부상이, 이보다 앞서 300건의 무상해 사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1:29:300법칙)
(2) 1:10:100 법칙
1:10:100 법칙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하자가 생기면 고치는데 원가 1이 들지만, 기업 내부에서 책임소재나 문책 등이 두려워 이를 숨기다 적발될 경우 지연비용을 포함해 원가 10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긴 제품이나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인도되었다가 발견되면 원가 100을 투입해 막아야 한다는 법칙입니다.
(3) 스위스 치즈모델
우리나라에서 시판되는 치즈는 보통 구멍이 없습니다. 반면에 스위스 치즈는 숙성과정에서 기포가 발생해 치즈 표면에 다수의 구멍이 발견됩니다. 이때 여러 장의 치즈를 겹쳐 놓으면 구멍이 메워지는 곳도 있지만 매우 드물게 여러 장을 겹쳐놓아도 메워지지 않는 구멍이 발생하는데 이를 비유해 여러 단계를 거쳤지만 문제나 허점이 생겨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인리히 법칙과 이태원 참사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턴호텔 서편의 좁은 골목길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 전례 없는 대형 압사사고가 발생했습니다. 159명이 사망했고, 31명이 중상, 165명이 경상을 입었습니다. 정치인들은 "군중들의 안전불감증"이 원인이었다, "공무원들의 안전관리와 통제 부족"이었다 주장하며 정쟁을 이어나갔습니다. 두 가지 이유 모두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시민들의 안전 불감증
당일, 해밀턴호텔 인근의 클럽에 유명인이 등장했다는 소식과 함께 건물 북서 측 삼거리(고지대)에 20분 만에 엄청난 인파가 빠르게 유입되었습니다. 서측 골목의 5평 남짓 뒤쪽 공간의 인파는 앞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그 뒤에 있었던 인파에서 밀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넘어져 연쇄적으로 깔렸다고 전해집니다.
출근길 지하철, 어떻게든 타기 위해 문이 닫힐 때까지 엉덩이로 사람을 세게 밀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요, 발 디딜 틈도 없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 것이 익숙한 문화가 다중이용시설 과밀화에 대한 안전불감증을 키웠습니다.
구조적으로 밀집을 피하기 힘든 공간을 이대로 그냥 방치한다면 반드시 제2, 제3의 밀집 사고를 일으킬 것입니다. 하인리히의 주장대로 300건의 무상해 사고와 29건의 경미한 사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각 역사 혼잡도를 다시 점검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의 조치와 더불어 국민들의 밀집지역에 대한 안전교육과 문제인식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2) 공무원들의 안전관리와 통제 부족
공무원들의 안전불감증도 당연히 이번 사고의 원인입니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사고 직전까지 79건의 압사 위험신고가 경찰에 접수되었지만 실제 경찰 출동 건수는 4건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최초 접수시점인 18시 34분경부터 인원통제 등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밀집을 막았다면 단연코 이런 사고는 없었을 것입니다.
나아가 행안부와 서울시에도 안전불감증은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3년간 억눌려있던 핼러윈 축제에 대한 수요로 외국인이 많은 이태원에 인파가 몰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상식적인 예측을 하지 못했으니까요. 행정 공백으로 안전사고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했습니다.
희생자분들을 추모하며
빠른 산업화와 민주화로 인해 5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나라들 중에 하나가 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너무 빨리 가느라 소중한 걸 많이 놓치고 왔는지, 자꾸만 우리 사회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잃은 건 소가 아니고 가장 소중한 국민들의 목숨입니다.
기업들은 무분별한 이윤 추구 과정에서, 국가는 관습적이고 관행적인 절차에 따라 문제의식 없이 입법과 행정을 다루어온 과정에서 '늘 해오던 대로' 안전에 대해 불감했습니다. 그 결과로 다리와 백화점이, 아파트와 배가 무너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무엇이 무너지거나 침몰하지 않았는데도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신 159명 이태원 참사 사망자분들의 명복을 빌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해 봅시다.
댓글